하나님처럼 사랑하라! / 요일 4:7-16 / 유기성 목사
이스라엘 선교사님 한 분이 예루살렘 안에 있는 세 그룹의 기독교인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유대인 기독교인, 아랍인 기독인, 외국인 기독교인이 있는데, 최근에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놀랍게 늘어나고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도 많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 오실 때가 가까왔다고 흥분하는데, 선교사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 부류의 기독교인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예수 믿고도 여전히 유대인, 아랍인 따지는 것은 그들이 진정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교인 수가 늘었다고 기뻐할 일만은 아닙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소문나야 진정 부흥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도 사랑으로 소문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직 진짜 예수 믿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7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권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누구나 이 말씀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 약간 주춤하게 됩니다.
8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는 말씀은 ‘사랑하자’는 말과 분명 다른 느낌입니다. 12절 말씀에 이르면 숨이 막힙니다.
12절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에게 사랑을 주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도 요한이 말하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라’고 명령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해야지’ 결심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게 되어야 진짜입니다.
이것을 사랑의 부흥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처럼 사랑할 수 없기에 주님이 임하셔서 사랑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1907년 평양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사랑의 부흥이 함께 일어났습니다. 두 집 살림을 하던 남편이 회개하고, 본 부인과 화합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이런 일이 이혼이 급증하던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하고 부러워했을 정도였습니다. 참 성실하다고 믿었던 하인들이 숨겨 놓았던 죄를 회개하였고, 그 주인과 가족들은 그를 용서하였습니다.
한 부인은 자신의 음행을 회개하기도 했습니다. 사회하던 선교사가 크게 걱정하였습니다. 남편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이 울면서 그 아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니 그 아내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매정하게 대한 것을 회개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미워하고 원망했던 일을 고백하며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교회가 초만원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조롱하러 구경왔던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회개하였습니다.
1900년대 초 중국과 한국의 선교사로 일했던 요나단 고우포스선교사에 의하여 전해진 당시 일화들입니다.
우리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고 신유와 능력의 역사가 일어날 때,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가 사랑의 사람, 은혜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16절 ...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능력을 받았다고 교만하고 비판하고 욕심을 부리고 분열을 일삼는다면 잘못된 영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셨다는 사실, 그 독생자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한 제물로 삼았다는 사실, 이 두 가지 사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저 사랑이 아닙니다. 불같은 사랑입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음식만 삼켜도 온 몸을 뒤틀면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오신 사람이 어찌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무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사랑의 불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폭포수같은 사랑이란 표현에 거칠게 거부감을 표하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어디에 그런 사랑이 있느냐고 했습니다. 자신은‘하나님의 폭포수같은 사랑을 받은 기억이 없다. 정말 그렇다면 말만하지 말고 느끼게 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부인하는 사람도 있지만 은근히 부인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습니다. 얼굴을 보면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의 얼굴이 아닌 것입니다.
어째서 그렇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며 십자가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의 사랑의 불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하신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하나님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사랑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공부 잘하고, 착하고 열심히 충성하여 하나님 마음에 들고 하나님이 종아하시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더 좌절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환상 중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였습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는 것이 저를 영원히 사랑하기로 결단하였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마음이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설교 열등감 때문에 몸부림칠 때, 고ㄹ니도전서 1장 27-29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한 자, 미련한 자, 멸시받고, 없고, 비천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것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3일 동안 믿지 못하다가, 이 말씀은 무조건 믿어야 할 복음을 깨닫고 성경책을 끌어 안고“제가 믿겠습니다.”하고 고백하는 순간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믿음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확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제는 십자가 복음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분명히 체험할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2절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13절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며 사는데 하나님처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형제 한분이 너무 너무 좋아하는 자매에게 프로포즈를 하였는데, 자매 쪽에서 반응이 없는 거에요.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하루에 한번씩 편지를 쓰자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사랑의 고백 편지를 썼어요. 그런데도 반응이 없자 형제는 하루에 세 번 편지를 쓰자 그래서 하루에 세 번씩을 러브레터를 써서 보냈습니다. 드디어 이 자매가 감동을 받고 결혼을 했는데 편지 배달한 사람과 결혼 했답니다. 자꾸 만나다 보니 정이 든 것입니다.
사랑은 이론이나 교리로 누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만나고 교제하고 동행하니 누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오신 주 예수님을 믿으면 ‘사랑해야 한다’ 가 아니라 사랑하게 됩니다.
요한 사도 자신이 그 증인입니다. 그는 세상 욕망과 거친 성격으로 성격이 불같아서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복음서에서는 요한 밖에 계셨던 주님이 성령으로 그의 안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선물이요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사랑이 없다면 회개할 것이 아니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랜 여행을 하고 오셨는데 선물이 없다면 딸들이 회개할까요? 선물을 찾을까요? 찾을 것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내겐 그 사랑이 없지? 왜 사랑을 주시지 않나요?
고전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이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대답하기가 힘이 드십니까? 그래서 사랑의 불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답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어서 회개할 것이 있다면 ‘사랑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사실과 소중함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돈을 구하고 건강을 구하고. 은사를 구했지 사랑은 구하지 않았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모르고, 그런 것들을 자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랑이 없는 가장 큰 이유요 회개할 제목입니다. 돈, 건강, 성공, 은사 보다 사랑이 더 큰 은혜요 축복인 줄 알면 반드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리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김흥섭 판사에게 어느 날 젊은 부부가 성격이 맞지 않아 이혼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이들은 아이 부양 문제와 재산 보상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그때 김 판사는 이 아이를 누가 책임질 것이요? 하였으나 대답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너는 누구하고 살기를 원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때 아빠의 손과 엄마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판사는 재판 일정을 한 달 연기하기로 하고 성경 한권을 사주면서, 고린도전서 l3장을 하루에 세 번 이상 한달 동안 1OO번을 읽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이 집에 돌아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후 그들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욕심을 회개하고서 이혼 소송을 취소하였습니다.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면 주님은 우리가 사랑하며 살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실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사모님이 부엌을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어디론가 사라져, 대단히 화가 났습니다, 사모님이 돌아 오시자, 다짜고짜 독하게 다구쳤답니다. 가만있는 사모님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딸이 소풍가는 날인 줄 아시기나 하셨어요? 새벽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바빠서, 미처 치우지도 못하고 기도회가 있어 갔기로서니 그럴 수가 있어요? 다른 집 남편들은 이럴 땐 치워 주기도 한다던데.”
궁지에 몰린 목사님은 온 집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답니다.“그래도 그렇지. 당신이 뭐 잘했다고 말대꾸야!”
그 때 교회 집사님이 찾아와서 몸이 아프니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에 방에 들어와 가슴만 답답하더랍니다.‘이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실까? 아내는 무엇이라고 할까?’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나갔더니, 기다리던 집사님이 가버렸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죄인의 심정으로 그 집사님 집으로 심방을 갔답니다.
목사만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을 하실 수 없으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월남전에 참가했다가 귀국한 한 장교가 배 위에서 항구에 인산인해를 이룬 군인 가족들을 보고 아내를 어떻게 찾나하고 고심했답니다. 아내는 손수건을 흔들기로 약속했는데 모두 다 손수건을 흔들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배 위에서 둘러보니 그 많은 사람 중에 손수건을 흔드는 아내의 모습이 한 눈에 척 들어오더랍니다.
오늘 하나님의 눈에는 누가 가장 뜨일까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는 자입니다.
얼마 전 한 자매를 만났는데‘나의 가장 기뻐하는 자이다.’하는 주님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도 사랑스러워 하지 않을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그의 마음에 나의 사랑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의 사정에 대하여 들어보았습니다.
그 자매는 너무나 어려운 형편에서 태어나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삶 때문에 그 마음 중심에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하고 뜨거웠습니다.정말 하나님께서 약한 자 미련한자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쓰심을 알았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성도여러분, 사랑의 부흥을 구합시다! 그리고 순종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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