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수님과 얼마나 친하십니까? / 요일1:1-4 / 유기성 목사
요한일서는 어떤 성경인지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이 성경을 강해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흔히 험한 세상, 악한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는 성경이 요한일서입니다.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려고 쓴 성경이지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가 세상에서 사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흔히 “기도합시다!” 하고 말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할 때인데 기도하지 않는 것이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기도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문제를 기도만 해서 해결하는 것이라면 성경책이 이렇게 두꺼울 필요가 있을까요? 기도를 하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기도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탠리 죤스 선교사, 2차대전 후 독일에서 독일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강연하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연을 하는 그 자리에 모인 독일 교회 지도자들이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려댔습니다,
스탠리 죤스 선교사는 당황했답니다, 연설을 마치자 그들이 다가와 말했습니다.“당신은 오늘 독일인들이 어찌하여 파시즘에 기울이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독일 교회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목표를 가져다줄 무언가를 찾고 찾았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 하나님의 나라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위하여 먼저 진리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왜 세상에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셨으며, 앞으로 이 세상은 어떻게 될지 알아야 기도도 바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말씀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 첫 부분에서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주 예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믿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영이가 어릴 때 어느 날‘인기가수 공연이 있는데 가도 돼요?’하고 물었습니다. 안된다 하고 말해 주려다가“하나님께 의논드려 보아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가려무나.”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저의 딸이 하나님으로부터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십니까?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고아원을 경영하는 죠지뮬러 목사님에게 찾아와서“목사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물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대답하시기를“제게 묻지 마시고, 하나님께 직접 물어 보세요.”죠지뮬러는 오직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것만 의지하여 고아원을 운영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죠지뮬러 목사님을 어떻게 도우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물으면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 주실까요? 주님과 이런 관계가 가능할까요? 아직 믿어지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먼저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만났음을 말씀합니다.
요일 1: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데 그 예수님을 요한은 눈으로 보고 그 말씀을 직접 듣고 손으로 만지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요한 사도는 유난히 주님과 친밀한 제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 사도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절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사귀어 봅시다 하는 말은 사도 요한이 누리는 엄청난 축복을 ‘흘려 보내주겠다. 함께 누리자’는 말입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라는 표현을 현재 완료형을 쓰고 있습니다.
그 말은 사도 요한이 단순히 과거에 예수님을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도 계속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또 듣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귐을 모든 믿는 자도 누리는 사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으로 주님을 보고 들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고후 5:16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3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누구를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주일이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십자가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고 신앙 파악을 할 때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쓰고 전도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것들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과 연합이요 사귐입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은 죽고 난 다음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닙니다.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고, 본질적인 복음의 핵심 교리들 일부나 전체를 부인하면서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올바른 교리를 지키려는 정통 보수신앙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복음적이고
정통 보수신앙을 가졌다고 그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사함받았다고 믿는 것조차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 당시 표어였던 이신칭의 교리 전체를 의심의 여지없이 다 믿는다 할지라도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교리를 지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정통 보수신앙을 가졌어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직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직분으로는 목사 장로요, 지식으로 신학박사이면서도 명예욕이나 이기적인 욕심을 해결받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인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없기 때문입니다. 평생 믿음을 지키며 정통교리를 위해 싸우던 사람이 임종할 때 가서 자신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에베소교회는 대표적인 정통 보수신앙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들이 이단들과 치열히 싸운 것에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무서운 책망을 받았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교회는 정통 교리만 있었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과의 사귐이 없었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교회 이런 그리스도인들을 지금도 흔히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우리의 가족관계나 교인관계도 예수님과의 사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3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어떤 사귐이든 주 예수님과 더불어 사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가족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교인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주님과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주님과 한 주간이라도 기도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해결이 안될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귐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상과 사람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라, 변혁시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동떨어진 사람이 되라, 수도원에 들어가서 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먼저 주님과 사귐을 갖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때만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계속하여 실제적인 사귐을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WEC 선교회를 설립한 CT 스터드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관을 세우고 지낸지 얼마 안되어 집에 뱀이 들어온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보호의 손길이 우리를 덮고 계시는구려. 오늘 아침 식사를 하자마자 아이들이 들어와 말하길‘침대에 뱀이 있어요!’하더군. 담요를 들추어 보니 가느다란 초록색 뱀이 있었소. 물리면 죽는다고 원주민이 일러주었던 바로 그 놈이더군. 간 밤에 그 놈과 함께 잔 거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자는 아마 한숨도 못 잤을 거요.”
우리가 이처럼 주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를 쓰면서 예수님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한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요일 1: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과 사귐을 가지려 할 때 명심할 것은 그것이 말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미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눅 24: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웨슬리목사님, 1783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 거리 한 집회소에서 로마서 서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웨슬리 목사님과 만난 것입니다.
일평생, 2천 명의 고아를 먹여 살렸고, 150억 원을 사용했던 죠지뮬러. 그의 젊은 시절은 방탕하고 질이 나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정 예배에 참석했다가 기도와 말씀 중에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방탕한 생활을 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편안하고 놀라운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예배 중에서 영으로 임재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어느 신학생이 올린 글입니다.“어느 날... 교수님 중에 한 분께서‘"앞으로 목회하려면 성경 암송을 300개 이상 해라. 그러면 교인들에게 인정도 받고 어디 가던지 성경 암송을 줄줄이 하면 교인들이 그런 목사님을 진짜 목사라고 부러워하고 존경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면서 거부 반응이 생겼습니다.”
이 신학생이 왜 거부 반응이 생기는 걸까? 말씀은 그렇게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보이지 않는 주님과 사귀고 동행할 수 있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말씀을 대하는 순간이 주님을 만나는 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 주님과 정말 사귐을 가질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저 자신의 경우를 보아서 여러분도 분명히 주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고등학생 때, 고린도후서 13장 5절 말씀으로 설교를 듣고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전도사님과 상담을 해도 믿어지지 않아서 믿는 척 해야 했습니다. 오늘 성경을 신학생 때도 읽었고 전도사 때도 읽었지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목사 안수를 받고 한 달 뒤 군목훈련을 받다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모든 것이 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부산에서 담임목회를 할 때, 눈이 뜨이고 안산에서 깊어지고 지금 선한목자교회에서 24 주님 바라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너무나 감사하였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이 구절이 아멘으로 이해되고 믿어지고 누려지고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먼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이 요한일서를 읽어가다 보면 우리의 기쁨이 넘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4절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기쁨은 주님과 사귐을 가지는 자가 누리는 가장 놀라운 축복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험해도 하나님은 성도들이 기쁨이 차고 넘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요한일서를 읽어 가면 좋겠습니다. 오직 주님과 친밀해지기만 갈망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CT 스터드 선교사의 선교관에도 많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스터드선교사는 말했습니다.“당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기엔 돈이 없습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 주며 그 분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 뿐입니다." 그들은 대답했습니다.“돈은 조금도 관심 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디엘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영국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좀 나은 사람이고, 뒤에 시종을 하나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부자라는 뜻입니다. 만약에 사종을 두 사람 거느리고 있다면 유산을 많이 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난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시종 둘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기 때문입니다.”
시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여러분도 뒤를 한번 보십시오!우리는 정통 보수신앙으로 만족하면 안됩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당신은 주 예수님과 친밀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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