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 / 요일3:10-16 / 유기성 목사
오늘 설교 제목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 는 너무 거칠어 보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증거하지 않는다면 이런 표현은 너무 극단적이라는 비난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진실을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10절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로 확연히 갈라진답니다. “환히 드러납니다.” 중간은 없다, 애매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뒤섞여서 누가 누군지 애매한 것 같은데, 아니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심각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구분이 됩니까? 무엇 보다,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악마의 자녀입니까?
어떻게 구분하지요? 무엇을 보고 그렇게 확연히 구분이 된다는 것입니까? 요한 사도는 그 기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악마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말씀이 성경이 아니라면 우리는 할 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1절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를 행하지 않는 것과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입니다. 악마입니다. 인정해야 합니다. 요한 사도는 이것을 가인의 예를 통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12절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
가인은 동생을 죽였는데, 왜 동생을 죽인 것입니까?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이유는 한 가지 가인이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다는 것입니다.
12절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는 상달되지 않았고, 아벨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신 것 때문이었습니다. 동생이 무엇을 잘못한 일이 있어서 죽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가인은 올바로 살고 하나님을 잘 믿는 동생 아벨에게 질투심을 느꼈고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인의 죄가 악마적인 것입니다.
시기, 질투가 이렇게 무서운 죄입니다. 상대방이 무슨 잘못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잘 한 것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질투하고 시기합니다. 그리고 별로 죄책감을 갖지 않습니다. 아닙니다. 시기 질투, 악마적인 뿌리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설교 열등감이 심하여 설교 잘하는 목사님을 보면 질투심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집회 때는 다른 목사님들 설교가 죽쑤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 자신이 너무 무서워 금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큰 죄, 작은 죄를 구분하지만 죄에는 작은 것이 없습니다. 주님 앞에 서보면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이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고 다투고 산 것이 큰 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작은 죄를 더 조심해야 합니다.
어느 분이 말했습니다.“기독교인에게 사랑이 빠진다면 기독교는 이슬람교보다 더 무서운 종교 율법적인 종교가 될 것입니다.”“사랑없는 기독교가 가장 큰 이단이라.”
죄, ‘어쩔 수 없었어!’ 이렇게 넘기면 안됩니다. 악마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성도들이 이유없이 미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가인이 그러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것 자체가 미울 수 있습니다.
13절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다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의인을 이유없이 미워하지만 우리는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영생을 얻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14절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두지만 시기 질투, 미움 정도는 죄로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재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15절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여러분 이제 미워하는 사람 없어지셨죠?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계십니까?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천국에 가야하니까 사랑해야 하겠구나.’ 생각하면 착각입니다. 형제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고 영생을 얻는 조건이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은밀히 죄를 짓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가 아직 예수님을 바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전도받아야 하겠구나!” 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6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다!’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구나 깨달아야 합니다.
어지간하면 말씀만 하셔도 되지 않습니까? 잘 못알아 들으면 하늘에 큰 글씨로 몇 달 동안 써 놓으면 누구나 알아듣지 않겠습니까? 죄지은 사람들 벌 세우면 되지 않습니까? 꼭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하는 것입니까?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했습니까? 악마가 역사하고 있고 죄지은 자는 반드시 지옥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삶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정말 지옥에 갈 죄인이었음을 깨달았습니까?
한번은 폴 워셔가 오하이오에서 설교를 막 끝냈을 때 아홉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일어서더니 울면서 온 몸을 떨면서 걸어 나오더랍니다. 폴 워셔가 강단에서 내려와 아이를 붙잡고 "아이야,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더니, 그 아이는 "저처럼 사악한 죄인도 구원하실까요?”라고 물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했느냐고 물었더니‘엄마 말 안들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웃을 일입니다. 그것이 무슨 죄라고 그렇게 울고 떨면서 나와 고백할 일입니까? 그러나 폴 워셔는 성령님께서 그 아이에게 일하고 계심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부흥의 시대에 흔히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죄에 대한 심각한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른들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아홉 살 난 아이를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통해 죄가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어린아이가 엄마 말에 불순종하는 그 작아보이는 죄라도 심판을 받을 죄이며 예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된 채 지옥에 가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옥에 가기 위하여 죄를 많이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가지 죄만 있어도 지옥에 갑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 앞에서 몇 번이나 죄를 지었던 것 같습니까? 단 한 번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여러분이 지은 죄 보다 엄청나게 큰 죄를 지은 것 같습니까? 그는 한번 불순종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 났습니다.
마틴 루터는 수도사였습니다. 죄지을 기회가 없는 곳에서 말씀을 보고 기도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죄책감에 떨었습니다. 이유는 하나의 죄만 있어도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만지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강하게 그의 마음을 짓눌렀는지 그는 거의 미칠 정도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았습니다. 단 하나의 죄라도 있다면 그 분에게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틴 루터는 자기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을 추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밥맛이 있겠습니까? 잠이 오겠습니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지옥을 알고 나면 아무리 힘들어도 차라리 사는 것이 낫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낱낱이 보기 시작했고 마음에서는 계속 죄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마다 사제에게 가서 고백했습니다. 사제는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루터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님, 죄를 좀 모아가지고 오든지 회개할 만큼 큰 죄를 짓고 오세요.“
그 사제는 루터가 겪고 있는 지옥이 눈 앞에 활짝 열린 것을 보는 죄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루터가 성경을 통하여 주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루터를 위해 하신 일의 영광이 그에게 비로서 엄청난 구원의 능력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루터는 십자가 복음과 주 예수님으로 지옥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감격이 얼마나 컸는지 종교개혁을 이룬 것입니다. 이것이 루터가 말한 이신칭의(以信稱義) 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의 변화는 없이‘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와는 너무나 다릅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를 한번 점검합시다.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한 흔적이 있습니까?
‘죄를 청산할 자신이 없다.’ ‘도무지 사랑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내일 오신다고 해도 안되겠습니까? ‘주님이 내일 오신다면 죄를 청산하지요, 사랑하지요.’ 하는 마음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음에 주의 영이 역사하고 있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죄를 청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여러분은 주님을 마음에 모셨지만, 무시하고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늦기 전에 주님을 향한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 은밀한 죄에서 벗어나 의롭게 살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게 됩니다.
오늘의 양식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런던 템플교회 교인이었던 에밀 메틀러씨는 식당을 경영하였는데 마음이 넉넉하여 돈을 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어 주는 일이 많았고, 기독교 단체에서 사람이 나와 도와달라고 하면 현금 서랍을 열어 상당한 액수의 돈을 기부하곤 했습니다. 언젠가 한 선교단체에 돈을 기부하려고 현금 서랍을 열었는데 그 안에 지폐와 동전들 사이에 못 하나가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 단체에서 나온 사람이 물었습니다. '못이 왜 그 안에 있나요' 에밀은 15cm 정도 되는 큰 못을 집어들면서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지불하신 값과 그 때문에 내가 진 빚을 잊지 않으려고 이것을 나의 돈과 함께 넣어둔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를 정말 바라보고 산다면 우리는 사랑하고 베풀며 살 것입니다.
이태리 한제훈목사님이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이후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세상에! 다른 사람에게 불평과 원망은 커녕 실망도 느끼지 않게 되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인지 충격을 받았답니다.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해야 다른 사람에게 실망조차도 안하게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다음 고백이었답니다.
"십자가에서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비판은 커녕 실망할 자격도 없는 죄인입니다."
여러분, 의로은 삶과 사랑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갈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죄의 유혹 보다 심각한 지옥의 실상을 압니다. 어떤 미움 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삽니다.
그러므로 너무 늦기 전에 죄를 청산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려고 하기 전에 가족들, 교우들, 이웃들부터 사랑해야 합니다.
지난 주, 어느 목사님을 만났는데, 쌍둥이를 낳아 기르시면서 힘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학교 선배이신 분이 전화를 하셨답니다.
그 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셋째 아이 이야기를 하시더랍니다. 아내가 셋째를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너무나 짜증이 났었답니다. 원치 않은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두 아이를 길러보았기에 예상했던 대로 그 아이로 인하여 밤잠도 제대로 못자고 얼마나 시간을 빼앗기는지, 집에만 들어오면 불평 불만이었답니다.
그런 어느 날 이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데 아무리 해도 그치지를 않았습니다. 울어도 너무 심하게 운다고 생각하다가 순간 섬뜻한 느낌이 들어 아이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가는 중에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렇게 품에서 죽은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왜 그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로서 따뜻한 사랑 한번 주지 못했구나, 계속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러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힘들다 불평말고 아이들을 사랑해 주라고 하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회개합시다. 십자가를 붙잡아야 합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고마워요 그 사랑을 가르쳐준 당신께/주께서 허락하신 당신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더욱 섬기며/이제 나도 세상에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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