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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우님이 명문 대학을 졸업한 딸이 현재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딸이 학업을 마치고 교수가 되기를 원했는데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다면서, 자식이 부모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따님입니까?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사는 자식은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따님 같은 사람을 통해 새로워집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출세해서 너 잘 먹고 잘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태어냈을 때 아버지는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초대 왕의 이름인 사울로 지어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사울왕처럼 출세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사울이 자기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바울은 이 세상에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바울일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염원이 담긴 사울을 버리고, 작고작은 사람이 되어 일평생 복음을 전하며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일관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 역시 자기 정체성에 대해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그가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렸기에 주님은 그를 통해 역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부르신 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의무인지 세례 요한과 바울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속으로 15 /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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