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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 22:10-12, 34
제목 : 오해의 파괴력, 이해의 회복력
찬양 : 우릴 사용하소서, 나를 통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22:10 르우벤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22:11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22:12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22: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우리 삶 속에서 가장 많은 갈등과 상처를 남기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오해입니다.
오해는 작은 불씨 같지만, 때로는 가정을, 교회를, 심지어는 하나님의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큰 불이 됩니다.
심리학자 루이스 스몰킨은 "인간관계의 70%는 오해에서 비롯된다"고 말했습니다. 작은 오해가 얼마나 큰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해는 그 모든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제단 하나를 두고 생기게 된 오해와 이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한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1. 오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파괴력이 있습니다.
22:10 르우벤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요단 동편 지파들이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것도 보기에 큰 제단이었습니다.
제단이라고 하면 신에게 제사를 드리도록 만든 단입니다.
태백산 정상에 올라가보면, 신령하게 보이는 제단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이 쌩쌩부는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거나 자기만의 신에게 기도를 합니다.
이처럼 누가 봐도 매우 큰 제단을 길갈에 세운 것입니다.
나머지 지파들은 이를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반역으로 오해했습니다.
제사는 성막 안에서만 드릴 수 있다고 배웠고, 지켜왔기 때문에 예민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러니 제단을 보자마자 감정부터 끓어 올랐던 겁니다.
그들은 전쟁까지 준비할 정도로 감정이 격분되었어요.
왜 이렇게 심각한 상황으로 번졌을까요?
상대방의 의도를 묻지 않고, 행동만 보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이렇게 쉽게 관계를 파괴합니다.
<예화>
교회에서 오해로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새신자가 예배 중 핸드폰을 꺼내는 모습을 봤어요. 그가 예배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엄청 비난했어요. 핸드폰이 우상이냐,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리는데 핸드폰에 마음이 빼앗기면 되겠느냐? 라고 말했어요.
그러나 나중에 알고보니, 가족의 위급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본 거예요.
어떤 목사님이 새벽마다 소리내서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방언도 하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깊어졌어요.
그런데, 기도 끝나고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왜 그렇게 소리내서 기도하세요?
담임목사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기도하는 건가요?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말이 되나요? 이런 오해가 자주 있습니다.
오해죠. 오해입니다.
오해는 그릇되게 해석하거나 뜻을 잘못 아는 것을 말해요.
잘못 해석하는 거죠.
*요셉의 형제들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장에 보면, 요셉의 꿈은 형제들에게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으로 오해되었습니다. 이 오해는 요셉이 종으로 팔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한나도 똑같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오해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어떤 모습으로 오해했나요? 술 취한 여인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엘리가 그녀의 사정을 들은 후에는 오히려 축복했습니다.
요단 서편 지파들에게 있어서,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죄인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행위로 간주되었고, 매우 심각한 종교적 도발행위로 보였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왜 이렇게 큰 제단을 세웠을까요?
22:26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22:27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동쪽 지파들은 별 생각이 없이 좋은 의도로만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 제단이 훗날 자기 자손들을 위한 기념비이기도 하며, 혹시 강 서쪽에 정착한 자손들이 동쪽 자손들을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게 하여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제외할까 봐 증거로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26-28절)
동쪽 지파들은 자손들이 여호와께 등을 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서쪽 지파들이 자신들의 후손들을 종교적으로 푸대접하거나 따돌릴 것을 우려해서 이 제단을 증거로 세웠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은 억울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모두 다 죽을 뻔 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행위로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 22:22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세 가지 이름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이런 표현은 자신의 결백을 강조하고자 할 때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 방법입니다.
우리도 오해받거나 억울할 때 있죠?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이렇게 기도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동쪽 지파들은 자신들이 너무 억울한 겁니다.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오해는 우리의 일상에서 늘 겪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진다'는 말처럼, 그냥 똥 밟은거야.
오해 받을 행동한 내가 잘못이지.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해 때문에 모든 일들이, 모든 관계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오해를 풀 수 있는 영적 방법이 있습니다.
용기 있게 물어보는 겁니다.
전쟁부터 일으키고, 판단부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절단을 보내서 물어보는 것처럼, 용기 있게 물어봐야 합니다.
한번의 오해가 교회를 영원히 떠나게 할 수 있습니다.
한번의 오해가 하나님 나라를 향한 모든 열정을 집어 삼켜버릴 수 있습니다.
2. 이해는 공동체를 하나되게 만드는 회복력이 있습니다.
이해는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교회에서 갈등을 많이 경험합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어떻게 갈등을 관리할 수 있나요? 대화와 이해로 가능합니다.
📌 스티븐 코비는 “진정한 이해는 듣는 데서 시작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오해를 풀 수 있습니다. 이해가 있는 곳에는 신뢰가 싹틉니다.
그리고 신뢰가 있는 공동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화는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요단 서편 지파들이 전쟁 전에 잘한 행동이 있습니다. 천부장을 뽑아서 보내어 대화를 시도한 거예요.
그랬더니, 요단 동편 지파들은 제단을 쌓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려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하나님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대화는 오해를 풀고,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상대의 입장을 듣고 이해할 때, 갈등은 해결됩니다.
대화는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다리이며,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대화할 때, 이렇게 질문한게 맞나요? 라고 되묻습니다.
A를 B로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제가 이해했는지 다시 물어보는 대화법이에요.
✅ 예화 1
한 회사에 마케팅 팀과 영업 팀이 있습니다.
마케팅 팀은 영업 팀이 고객과의 소통을 못한다고 비난합니다.
영업 팀은 마케팅 전략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불만이 있습니다.
서로를 원망하며 대립하고 있어요.
이런 대립은 무엇으로 풀 수 있나요? 대화입니다. 서로의 어려움을 얘기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나눌 때, 공동체는 건강해집니다.
📌 이런 말이 있어요.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싸우게 될 것이다.”
우리 공동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오해를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입니다.
이해는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22:33-34)
수 22:33-34을 함께 읽겠습니다.
22:33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22:34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 동편 지파들의 설명을 듣고, 그들을 정죄하는 대신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화해합니다. 이해는 공동체를 다시 하나 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이해는 단순히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공감하고, 그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해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정죄 대신 용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이해의 중요성
우리는 각자 다른 배경과 경험,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보더라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해는 단순한 감정적 공감을 넘어 실천적 사랑으로 이어질 때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 아브라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그가 걸어온 길을 이해하라.”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열쇠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삶 속에서 증거해야 합니다.
<결론> 이해를 선택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오해와 이해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해하면 파괴하고, 이해하면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대화는 오해를 해결하는 강력한 도구이며, 이해는 공동체를 하나 되게 만드는 힘입니다.
우리가 가정과 교회, 직장에서 서로를 이해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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