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빌3:12-14]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c.s. 루이스의 명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라는 책이 있다.
경험 많고 늙고 교활한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처음으로 인간을 유혹하는 임무를 맡게 된 풋내기 악마인 조카에게 보낸 서른 한 통의 편지다.
이 편지에는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방법들이 기발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나이 서른이 되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그는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삶의 속도를 높이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돌아보지 못하는 3가지가 생기게 된다.
그것은 ‘건강’과 ‘가족과의 관계’와 ‘자신의 내면’이다.
나이 서른부터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20~30년을 동분서주하면 어느 정도의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태반이지만).
그러나 이미 ‘자신의 건강’과 ‘가족과의 관계’와 ‘자신의 내면’은 상당부분 잃어버린 상태가 되고 만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건강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마귀가 보기에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자신을 똑똑하다고 철석같이 믿는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해친 건강을 되찾으려고 돈을 다시 쓰는 사람이 된다.
가족여행 한번 제대로 못가는 어색한 가족관계와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불치의 병을 얻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향해 가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나요?
우리가 나아갈 푯대가 없으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흔들린다.
잘못된 목표는 우리의 걸음을 헛되게 만든다.
바울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무엇을 잡으려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가?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정통히브리인이었고, 로마의 시민권자였으며, 엘리트 교육을 받아온 사람이었다.
가말리엘의 문하에 들어가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초대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다. 바울은 유대 종교에 대한 열심, 바리새인으로서 확고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어긋나는 모든 사람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었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했다.
그런 바울이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른 인생을 산다.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던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매를 맞고 핍박을 받는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이런 희생을 감당하고 있을까?
바울의 푯대는 무엇이길래 삶이 온통 바뀌었을까?
예수님 때문이다. 예수님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예수님 만나고 나니까 목표 설정이 틀렸다고 깨달았다.
인생 잘못 살았다고 느꼈다.
이제는 생각도 마음도 목표도 푯대도 바뀌었다. 모든 삶의 목적은 오직 복음이다.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을 위해서 살아간다.
우리는 연초가 되거나 연말이 되면 계획을 세운다.
저마다 얼만큼 돈을 모아야 하는지, 공부는 어떻게 할건지, 알바는 계속할지 안할지,
자기계발을 위해서 어떤 기술을 배울지를 계획한다.
모든 계획, 모든 목표, 모든 목적, 모든 노력, 모든 열심은 다 좋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였으면 좋겠다.
'주를 위해서' 라는 말을 붙이자.
모든 일에 주를 위해서,,,
모든 목적에 예수를 위해서,,,
주님을 위한 일이 아니면 인생이 덧없다고 느껴진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은 변화시키고, 바울에게 원대한 계획을 이루도록 이끄셨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바라신다.
오늘 말씀을 보면,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한다.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푯대는 누구의 푯대인가? 바울만 알고 있는 푯대다.
바울에게만 있는 목적이다.
바울만 알고 있고, 바울에게만 목적이 있는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간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달려간다는 말은 쫓아가다, 추구하다, 찾아다니다, 따르다 라는 의미가 있다.
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위해서 열렬히 따라간다는 말이다.
바울은 왜 이렇게 열정이 많은가?
목숨까지 바칠 정도로 인생이 뒤바뀌었는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일인자가 왜 이렇게 사는가?
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바울은 무슨 이유일까?
여러분이 깨달아야하고, 여러분이 질문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신앙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다. 3년 동안 땀흘리며 신을 찾았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해봤다.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으면 나는 뒤도 안돌아보고 이곳을 떠나겠다는 심정으로 찾았다.
그러니 고3때 공부는 성적 유지할 만큼만 하고, 새벽기도 갔다.
아침 등교 후 영어단어 외울 시간에 큐티했다. 어쩌다가 강북 8학군 대신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등교길만 1시간이었다.
오고 가는 시간 동안 성경을 읽었다.
인생의 참된 목표를 알고 싶다면,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는 인생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려봐라.
그 시간들은 다 헛되지 않다. 어중이 떠중이로 어중간하게 살지 말라는 말이다.
예수 모르면 예배를 드려도 꽝이다.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다 헛되다.
성도들이 나보고 귀공자 목사라고 한다. 그렇게 보이는가?
목사로서 품위 유지하려고 마음을 쓰는 것 뿐이다.
내 얼굴을 보면 고생 안해 본 사람 같다고 한다.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란 사람 같다고 한다.
사실이다. 귀하게 자랐다. 손에 물 하나 안 묻히도록 사랑받았다.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지금도 어머니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살면서 여러 경험들을 많이 해봤다.
도미노피자에서 일하고, 음식점, 노가다, 도서관 사서, 피시방, 세차알바, 어플 가입 영업, 책 판매, 특허청, 음료판매, 농사 등등
중부시장에서 밤 일도 해봤다.
나보다 경험 많은 사람이 많이 있다. 내가 겪을 수 있는 일들은 나름대로 해봤다고 생각한다.
해보고 느낀 게 있다. 왜 나를 목사로 부르셨는지 알았다.
난 평범한 회사원이 꿈이었는데, 태권도 관장이 되는 게 내 꿈이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왔다.
후회하지 않는다.
모든 경험들, 모든 시간들을 하나님은 헛되이 사용하시지 않는다.
수 많은 경험들을 다 사용하신다.
과거를 돌아볼수록 나는 깨닫는다.
나에게 맞는 것은 목회다. 이것이 나의 푯대다.
심방 다니고,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말씀 준비하고, 성경 읽고, 목회사역을 위한 아이디어 짜는 것이 즐겁다.
설교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설교자로서 즐겁다.
나의 푯대는 내 인생을 바칠 교회를 만나고, 한 교회에서 영혼구원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준비되어 가고 있다.
여러분의 푯대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는가?
그리고 푯대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한걸음씩 인도하신다.
2칸, 3칸, 점핑해서 결코 이끌지 않으신다. 한 스텝씩 인도하신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 처음부터 너에게 믿음을 줄테니 나를 따라오라.
이렇게 이끌지 않으셨다.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 모두가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했다가 하란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가 죽는다.
하란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란에서 부를 축적한다.
그리고 원래 목적지인 가나안 땅으로 간다.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다.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기근이 들어서 상황에 맞춰 움직이면 무슨 일을 생겨도 축복을 받는다.
하나님 만나고부터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을 저절로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은 한걸음씩 우리를 인도한다.
우리는 어떤가?
큰 목표만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이루고 싶지만 목적을 이루기 위해 희생하지 않는다. 희망만 있을 뿐이다.
1%의 기적은 엄청난다.
0.1%가 모이고 모여서 1%를 이룬다. 1%가 모여서 10%를 이루고, 이것들이 모아져 1000%, 1만%를 만든다.
여러분이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 달려가지 않으면 이런 기적인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여러분이 신앙을 위해서 전심으로 힘쓰지 않는다면 단 1%도 변하지 않는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꼭 먹는다. 오래 살려고 먹는다.
스트레칭을 간단하게라도 한다.
새벽기도에 나가면 1시간을 기도한다. 집에 들어가서는 큐티책을 펴놓고 큐티를 한다. 성경1구절을 노트에 적는다.
오전에 책을 읽는다. 나름대로 목회 훈련을 하고 있다.
이 습관을 만들기 위해 66일을 지나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
우리 집은 66일 동안 한 가지 습관을 만들지 않으면 얘기를 못한다.
그래서 딸이 아빠한테 어떤 조건을 얻기 위해서 66일 동안 공부를 하고 있다.
어제까지 45일이 되었다. 매일 인증 사진으로 올린다.
여러분의 푯대를 꼭 찾았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
난 1년 동안 3청년부에게나, 3부예배 드리는 청년들에게 열정을 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푯대를 발견했다.
그건 나의 푯대가 아니다. 바울을 부르신 하나님을 위해서 달려가는 바울만의 푯대였다.
나의 푯대를 찾고 나의 푯대를 위해 달려가는 영가족 모두가 되길 축복한다.
부름의 상을 위해 달려가면 타인과 비교할 여유조차 없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나만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깨닫게 된다.
시인 윤동주는 매일 저녁 신촌에서 서강까지 천천히 산책을 했다고 한다. 산책을 하면 심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슈바이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저녁 한 시간을 구별해 놓았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위해, 연구를 위해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5-6시간을 글을 쓴다. 자신이 해야 할 푯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월요일 오전에 무조건 스타벅스에 간다. 그것이 나의 일상이다.
목회자에게 월요일이 제일 힘든 시간이고 게으르고 싶은 날인데, 그럴 때 고통을 이겨내면 스타벅스에서 목회를 준비한다.
나는 하남에서 제일 큰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
그곳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다.
하남교회 담임목사님은 매일 큐티를 놓지 않았다.
여행을 가도, 세미나를 가도, 늦잠자서 새벽에 나오지 못해도,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큐티책을 열고 말씀을 묵상하며 줄을 긋고 은혜 받은 단어에 동그라미를 쳤다고 한다.
그 습관이 수십년이 지났는데, 자신이 쓰임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큐티 말씀을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간증을 했다.
여기에도 큐티를 놓지 않고 매일 영적 싸움을 치르는 사람이 있는 줄 안다.
붙잡고 있는 큐티를 통해 하나님께서 큰 기적을 베푸시리라 믿는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가? 바울은 푯대가 정확하게 보여서 미친듯이 달려갔다.
잠깐만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인생을 그려보자.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말이다.
주를 위해서 성공하길 바란다.
주를 위해서 공부하길 바란다.
주를 위해서 부자되길 바란다.
주를 위해서 승진하길 바란다.
주를 위해서, 오직 주를 위해서 살아가는 모든 영가족들 되기를 축복한다.
728x90
반응형
'[설교] 설교 메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교] 함께 가는 공동체, 여호수아 1:10-18 (3) | 2025.03.27 |
---|---|
[설교] 말씀으로 퓨처셀프를 보라, 여호수아 1:1-9 (1) | 2025.03.26 |
[설교] 오해의 파괴력, 이해의 회복력, 여호수아 22:10-12, 34 (2) | 2025.03.24 |
[설교]당신은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유언, 유산) / 여호수아 23:1-11 (2) | 2025.03.23 |
[설교] 나의 기도로 세상이 바뀐다 / 에스더 4:14-17 (1) | 2025.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