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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여호수아 1:10-18
제목 : 함께 가는 공동체
찬양 :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449장 예수 따라가며
[수1:10-18]
10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16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다 행할 것이요 당신이 우리를 보내시는 곳에는 우리가 가리이다
17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18 누구든지 당신의 명령을 거역하며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니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함께 하는 예화
공동체의 힘
미국 캘리포니아에 레드우드라는 참나무가 있습니다.
이 참나무는 수령이 2천년쯤 되며, 높이가 100m를 넘고 둘레도 10m가 넘는 큰 나무입니다.
이렇게 큰 나무가 어떻게 비바람을 이겨 내는가를 연구하다가 나무 밑을 파 보고는 중요한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 덩치 큰 나무는 뿌리를 깊이 박고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까닭에 어떤 기상 변화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폭풍, 비바람, 기상악화를 혼자 이겨낸 것이 아닙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뿌리가 더 단단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모두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영가족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경기를 보면 선수와 함께 뛰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가이드 러너입니다.
이 사람은 시각 장애인의 눈이 되어주기도 하며, 페이스 조절과 함께 뛰어주는 조력자 역할을 해줍니다.
시각 장애인 주자와 동반 주자인 가이드 러너는 서로의 손에 끈을 연결합니다.
안전하게 주로를 달릴 수 있도록 끈의 길이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함께 뛰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은 가이드 러너와 함께 굽이굽이 주로를 달려서 끝까지 마라톤을 완주하게 됩니다.
혼자라면 가능할까요? 아닙니다.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자기 혼자서는 아무리 발버둥 처도 한계를 이겨내기 어렵습니다.
유혹과 시련에 부딪힐 때 넘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함께 신앙생활할 때 그리스도인은 모든 환난을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만 살기 위해서 서로 죽이는 제로썸 게임을 하는 공동체는 살아남지 못하겠죠.
서로 살리는 공동체가 하나님 나라 공동체이며, 윈윈하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모세로부터 후계자로 세움을 받게 된 여호수아가 리더로서 처음으로 행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어서 리더쉽의 첫 관문은 요단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순종했던 것처럼 나의 리더십에도 잘 따라줄까라는 고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이면 큰 군대와 같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들에게 지시한 첫 명령이 이것입니다.
1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11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
여호수아가 원했던 것은 진중에 두루 다니며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 양식을 준비하라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꼼꼼하게 살폈습니다. 리더십이 교체 된 후에 명령만 내리는 권위자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움직이며 진중을 두루 살피는 꼼꼼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소식을 한 사람도 빠짐 없이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양식도 준비했습니다. 이 양식이 전투 식량만큼의 의미는 아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떠날 마음의 채비를 할 수 있는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3일이라는 시간을 주면서 약간의 긴장감 가운데 마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한 사람도 모르지 않도록, 빠지지 않도록, 낙오되지 않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1. 영적 공동체는 함께 가는 공동체입니다.
가나안 땅은 누구와 함께 들어가는 곳입니까? 여호수아 혼자만 가야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이끌고 가서, 정복하고, 정착해야 합니다.
믿음 있는 사람들만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힘 있는 군사들만 가는 것도 아닙니다.
거룩한 제사장들만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가야 합니다.
함께 가는 공동체는
백성의 관리들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리더들만 알지 않습니다.
부분적으로 정보 빠른 사람만 아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압니다.
그리고 함께 가는 것입니다.
200만명이나 되는 인원 안에는 노약자, 몸이 불편한 분들, 어린이, 임신한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있을 거에요.
흠 없고 티 없는 공동체는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젊고 완벽한 공동체도 없습니다.
좀 약해도, 좀 부족해도, 모가 나 있어도 이들 모두가 저 가나안 땅에 입성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나안 땅은 한 명을 위한 땅이 아닌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땅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생각 속에는 공동체의 한 부분만 생각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만 생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부분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모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는 것이 확실히 빠릅니다.
그러나 오래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합니다.
예화) 저의 아버지는 명절만 되면 늘 발걸음이 바쁘셨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고속버스표를 발권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전철을 타고 동서울 터미널 매표소에 갔습니다.
가족들이 따라오든 오지 않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빨리 가자고 재촉하다가 먼저 슝~ 하고 가십니다.
서둘러서 고속버스표를 발권하니 가족들은 편했지만, 떨어져서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저에겐 늘 불편했습니다.
저도 가끔씩 의욕이 불타오를 때는 직진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옆 사람 생각 안하고 급발진 할 때가 있습니다. 욕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늘 조심합니다. 말씀에 대한 정신보다 내 욕심대로 이끌까봐 경계합니다.
영적 공동체는 함께 가는 공동체입니다. 발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왼발 맞춰 가~ 하는데 왼발 못맞추면 “너는 왼발도 못맞추냐?”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 설명해 줘야 합니다.
함께 가기 위해서 입니다.
<기러기 예화>
하늘을 보면 가끔 기러기떼를 볼 떼가 있습니다.
기러기는 항상 V자를 그리고 긴 여행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가는 도중에, 앞장서 가는 기러기를 뒤따라가는 기러기들이 박자를 맞추어 ‘끼륵, 끼륵’하고 울어댄다고 합니다. 서로 응원하는 소리이기도 하지만, 자기들이 뒤에 쳐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그들만의 신호를 보낸다고 합니다. 앞만 보고 날아가는 기러기, 제일 앞에 서 있는 까닭에 가장 혹독한 바람의 저항과 싸우면서 전진해야 하는 리더 기러기에게 그 소리는 힘이 되는 소리입니다.
함께 가면 힘이 되고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 모든 사람과 함께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요즘에는 카카오톡이 있어서 메시지를 띵~ 하고 보내면 끝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너무 많은 메시지가 오니까 가끔씩 중요한 메시지를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여기며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아마 목원들 중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이 있을 거에요.
카톡 보고도 너무 일이 바빠서,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여기에 집중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리더는 이런 사람까지도 품는 것입니다. 전화해서 잘 알도록 설명하고, 얼굴 볼 수 있으면 마주보고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수아는 ‘함께 가는 공동체’ 이것을 명령하며 요청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동체를 이끈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예수님은 백성들과 함께 어울렸으며, 약한 자, 죄인들에게 찾아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저 비천한 인생의 자리까지 찾아가셨습니다. 왜요? 함께 데리고 가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고 함께 하지 않는 죄인들, 세리들, 소외된 사람들, 가정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다가갔습니다. 나와 함께 가자고 말이죠. 당시의 성전에서 왕따 당하던 사람들에게까지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할 수 있는 한 사회적 약자들을 챙겼습니다. 함께 가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 성문교회 영가족들도 말씀을 따라 함께 가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축복합니다.
2. 함께 가는 공동체는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의식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도자들에게 3일 동안 떠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명령하면서,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반 지파에게도 말합니다.
12 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역사적 의식을 강조하며 전쟁에 참여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왜 갑자기 세 지파를 콕 찍어서 언급하고 있을까요?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여호수아에게 잠재적인 반대자들이라서 그럴까요?
여호수아의 리더십이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 지파는 요단 동편의 땅 성읍을 미리 받았습니다.
차지한 요단 동편의 땅은 정복해야 할 땅이 아닙니다.
모세가 살아 있을 때에 미리 정복한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을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미리 기업으로 분배받은 지역입니다.
그러다보니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에 우리는 이미 땅을 기업으로 받았으니 전쟁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까봐 미리 요청한 것입니다.
여호수아에게는 그들이 필요했습니다.
반대자들을 리더쉽 안에 들어오도록 하고, 그들을 지도자라는 권위로 굴복시킨 것이 아닙니다.
15절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도록 함께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한다는 것은 당신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나 혼자만으로 잘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런 환상은 빨리 깨지는 것이 좋습니다.
함께 있어야 잘할 수 있고 쉽게 할 수 있고 힘을 합쳐야 뭐라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개인의 웰빙과 힐링의 시대를 넘어 서로 힘을 합쳐 가는 것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연대가 필요합니다.
자녀 양육에 있어서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좋은 육아를 할 수 없습니다.
같이 참여하고 함께 해야 무엇이든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힘들었으니 당신도 이만큼 힘들어봐라. 이런 마음은 서로에게 독이 되는 것입니다.
10분이라도 자녀를 위해서 함께 놀아줄 수 있는 부모,
10분이라도 나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10분이라도 함께 밥을 먹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고백해 보겠습니다. “저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똑같습니다. 목회자 혼자 교회를 이끌어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뛰어나도 아무리 능력 있어도 혼자서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리더의 노력과 열심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폭발적인 성장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목회철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함께 발 맞춰서 걸어갈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사회 구조를 보세요. 회장님, 사장님 혼자 일하나요?
아닙니다. 함께 마음을 모으고 함께 하는 임원들과 사원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합니다.
사람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이런 감정이 느낄 수 있는 곳에 있을 때 사람은 가장 행복하고, 기쁘고, 존재감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때 소속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놀고먹는 위
사람의 몸에는 여러 가지 기관들이 있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 기관들이 오늘날과 같이 서로 의좋게 돕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제멋대로 각각 놀아났다.
하루는 이 기관들이 모여 자기 자랑도 하고, 남의 흉을 보기도 했다.
"아무리 보아도 저 위란 놈은 언제나 손끝 하나 놀리지 않는단 말야."
손이 말했다.
"그래, 그 놈은 가만히 앉아서 맛있는 음식은 모두 받아먹는단 말야."
입이 말했다.
"나쁜 놈, 나는 이제 음식이 들어와도 씹지 않을 테야."
이가 말했다.
"괘씸한 놈. 나는 이제 음식을 먹지 않을 거야. 어디 좀 견뎌 보라지."
입이 말했다.
"좋았어, 우리 한번 위란 놈을 혼내 주자고. 오늘부터 어떤 음식도 입에 넣지 않을 거야."
손이 말했다.
"좋아, 나도 가만히 있을 테니까."
손과 입과 이는 의견일치를 보고, 그날부터 음식을 먹지도 씹지도 않았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손발은 힘이 빠지고, 다른 기관들도 흐느적흐느적 맥이 빠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글쎄 말이야, 이거 큰일 났군."
기관들이 야단이 났다.
"안되겠어. 음식을 먹어야겠어."
"그래, 위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기관들은 서로 자기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다른 기관들도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겐 당신이 필요없다가 아닙니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에게 ‘나는 필요없는 사람입니다’ 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존재감이 얼마나 상실될까요?
‘언제 행복할까요?’
사람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당신은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내 몸의 한 부위를 잘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을 가장 최적화해서 만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왜 다툼이 있고, 하나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익 때문에 다툼이 생겨나는 것이다.
다른 생각, 다른 이익, 다른 욕심을 품기 때문에 공동체가 어그러지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지향해 가야 하는 목적을 상실할 때 이런 일이 생깁니다.
여호수아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200만명이나 되는 수 많은 인원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 하나에 목적을 거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그들을 다 이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을 기억하며 전쟁에서 희생이 있더라도 아직 땅을 얻지 못한 동료들을 위해서 함께 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지도자로서 인정받으려고 하고,
사람들 시선을 의식하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절대 못 들어갈거에요.
가나안 땅 정복은 여호수아라는 리더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과 함께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일본 사업가들과 한국 사업가들의 의식구조를 비교한 글을 보면 이렇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일본의 사업가들은 자기에게 남아 있는 개인 재산을 모두 다 회사에 투자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회사가 망하면 그 회사에 딸린 모든 식구들이 다 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국 기업가들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사업이 망하고 난 뒤 내가 어떻게 생존할 수가 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서 회사의 공적인 재산까지 모조리 빼돌린다고 합니다.
개인의 이익을 뛰어넘어 우리가 속해 있는 이 곳이 운명 공동체, 영가족 공동체 입니다.
그래서 함께 가야 하고, 서로가 필요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6-27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2:26-27]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운명 공동체, 영가족 공동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은 우리의 고통이며 나의 고통입니다. 당신의 좌절은 우리의 좌절이며 나의 좌절입니다.
당신이 쓰러질 때 당신 한 사람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쓰러집니다.
목장이 쓰러지고 교회가 쓰러집니다.
반대로 당신 한 사람의 자랑스러움은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움입니다.
여호수아가 르우벤, 갓, 므낫세 지파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것처럼,
우리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라는 마음으로 영적인 손길을 내밀기 원합니다.
고동훈 담임목사님께서 설교 예화 중에 쓴 내용입니다.
함께 사는 공동체, 혼자가 아닌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공동체는 허니비와 같은 공동체라고 했습니다.
꿀벌들은 꿀을 발견하면 혼자만 배부르게 채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꿀이 있는 곳을 알려주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며, 함께 살아간다고 합니다.
꿀벌 혼자만 산다면 이럴 필요가 없겠죠.
우리는 허니비와 같은 공동체로 함께 살아가는 영가족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수님이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다 떠날 것을 알았지만, 제자들과 항상 함께 했습니다.
온 세상을 위해 희생제물이 되는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의 소식을 전할 제자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함께 가는 공동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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